'법 없이도 살 사람'들만 모여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회
생활을 하는 우리가 법 없이 살기는 매우 어렵다. 여러 사람
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
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리 강제적인
규칙을 정해 놓아야 한다.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
해 강제성을 갖도록 만들어진 것이 바로 '법'이다. 하지만 복
잡한 현실의
구체적인 상황을 모두 반영하여 법률을 만들려
면 법은 무한정 길어질 수밖에 없다. 따라서 법은 추상적인
규정으로 만들어진다. 그렇기 때문에 법을 현실의 구체적인
사건에 적용하는 과정은 이른바 '법률적 삼단논법'에 의해
이루어진다. '법률적 삼단논법'이란 추상적인 법 규정은 대전
제로, 구체적인 사건은 소전제로 놓고, 법 규정이 그 사건에
적용될 수 있는지 판단하여 결론을
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.
예컨대 A의 노트북 컴퓨터를 B가 몰래 가져가서 사용하다
발각되어 A가 B를 검찰에 고소했다고 하자. ㉠검사는 이 사
건이 어떤 법 규정에 해당되는지 검토한 후, 법정에서 B
의 행위가 절도죄를 규정한 형법 규정에 해당되므로 형벌을
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. 이에 대해 ㉡B의 변호사는 B가 노
트북 컴퓨터를 훔쳐 간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려고 했던
것이므로, 검사가 내세운 형법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검
사와는 다른 주장을 한다. 그러면 법관은 양쪽의 주장을 참고
하여 B의 행위가 과연 검사가 내세운 형법 규정에 해당되는
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한다. 만약 해당된다고 판단되면 법관은
그에 맞는 결론, 즉 유죄 판결을 내린다. 이와 같이 검사, 변
호사, 법관은 모두 '어떤 사건이 어느 법 규정에 해당되는지'
를 다룬다.
그런데, 많은 훈련을 거친 법률가들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
건에 적용할 수 있는 적당한 법 규정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
쉬운 일이 아니다. 적당한 법 규정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현
재 시행되고 있는 법 규정의 수가 엄청나게 많을 뿐 아니라,
기존의 법 규정도 수시로 개정되고, 새로운 법 규정도 계속
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. 그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에 적용
될 가능성이 있는 법 규정이 여러 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.
이로 인해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 사건에 적용할 수
있는 적당한 법 규정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.
만일 이와 같이 어떤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적당한 법 규
정을 찾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? 이 경우에 형사재판*과
민사재판*은 서로
다른 결론을 내리게 된다. 국가와 국민이라
는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형법에서는, 법률에 미리 범죄와 형
벌이 규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
원리가 엄격하게 적용된다. 따라서 형사재판에서는 어떠한 사
건에 적용할 수 있는 적당한 법 규정이 발견되지 않으면 법
관은 법 규정의 적용을 포기하고 피고인에게
무죄를 선고해
야 한다. 물론 피고인의 행위가 도덕적으로는 비난의 대상이
될 수도 있지만, 함부로 다른 형법 규정을 가져다 적용을 하
면 안 된다는 것이 형법의 대원칙이다.
반면, 기본적으로 대등한 두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민
사재판에서는 법 규정이 없다고 해서 그 판결을 포기하는 것
이 아니라, 최대한 그 사건과 관련된 일반 원칙을 찾아내서
손해와 이익을 공평하게
조정하려고 노력한다. 즉, 법 규
정 찾기에 실패해도 관습법이나 건전한 상식을 기준으로 판
결을 내리는 것이다. 따라서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
자라 하더라도, 어떤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사실이 분명하다
면 민사재판에서는 피해자의 손해에 대해 배상을 하라고 판
결할 수 있는 것이다.
* 형사재판 : 형법의 적용을 받는 사건을 다루는 재판.
* 민사재판 : 개인
사이의 경제적·신분적 생활 관계에 관한 사건을
다루는 재판.